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하이럼 존슨 (문단 편집) === 상원의원 === 하이럼 존슨이 상원의원으로서 첫 임기를 시작한 1917년은 [[치머만 전보 사건]]으로 극대노한 미국 정부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을 결의하던 시기로, 당시 독일계와 아일랜드계를 중심으로 세력이 강성했던 고립주의 정치인들이 완전히 기가 죽어 1차대전 참전과 군비증강에 관련된 의결에 찬성 및 기권표를 던지는 와중에도 꿋꿋이 전쟁에 반대하는 일관적 태도를 보여 지조가 있다는 평판을 얻었다. 하지만 1차대전은 끝내 미국의 개입을 통한 협상국 진영의 완승으로 마무리되었으며, 이에 베르사유 조약의 비준에 거부표를 던지거나 미국의 국제연맹 가맹에 반대하는 등 끝까지 고립주의 기조를 유지했고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사망한 1919년 이후엔 불 무스 공화당원들의 수장 자리도 이어받아 더이상 미국이 대외 개입을 하지 않고 아시아인들의 이민도 받지 않을 것을 주장하면서 1924년 이민법 등 각종 반아시아, 반이민 법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1920년대에 접어들자 유색인종을 제외한 모든 시민권자의 보통선거권이 통과되면서 캘리포니아의 선거권자 수는 2배 이상으로 늘어났는데, 이 과정에서 중산층 및 하류층, 여성을 주 표밭으로 공략하는 데 성공한 하이럼 존슨은 1928년 선거에서 이전에 비해 득표율을 10퍼센트 이상 늘리는 등 캘리포니아 내에서 압도적 우세를 굳히는데 성공했으며, 자당 소속 대통령인 [[캘빈 쿨리지]]와 [[허버트 후버]]에게 크게 실망해 [[프랭클린 D. 루스벨트]]를 강력히 지지한 덕분에 1934년 상원의원 선거에선 민주당과의 단일화를 구성하는 데 성공, 무려 '''94.66퍼센트'''에 달하는 미국 역사상 유례가 없는 득표율을 달성하는 등 승승장구한다. 이후 1940년 선거에서도 민주당, 진보당과의 단일화에 힘입어 압승을 거두고 상원의원으로 재직하던 도중 뇌동맥에 이상이 발견되어 입원했으나, 워낙 고령이었던 탓에 뇌혈전증으로 사망했다. 공교롭게도 하이럼 존슨이 사망한 1945년 8월 6일은 그가 평생을 바쳐 지켜온 고립주의 신념이 [[제2차 세계대전]]의 클라이맥스인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히로시마 원폭투하]]로 완전히 끝장나는 날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